기고/컬럼

<동탄국제고>온 국민의 만세소리가 일구어 낸 10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특집기사

참고자료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 국제학술포럼 개최

 

지난 3월 28일,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100주년을 맞아 서울 프레스 센터에서는 ‘국제학술포럼’이 개최되었다. 이에 참여한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3·1운동과 임시정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했고, "3·1 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정신은 세계인과 함께할 때 더 빛난다" 며 "세계인의 열망이 모여 독립을 이룬 대한민국은 민주와 평화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함께하고 있다" 고 강조했다. 이 포럼은 ‘3.1운동에서 촛불혁명으로, 임정 수립에서 통일 한반도로’ 라는 슬로건을 내걸면서 28일부터 29일까지 이틀 간 진행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민족사적 위상과 성격, 삼균주의와 제헌헌법의 균등주의에 대한 강의가 진행되었으며 한국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하며 영어 동시통역이 진행되었고, 연세대학 교수 백영서, 인도 상원위원 스와판 다스굽타, 시카고대학 교수 브루스 커밍스, 성공회대학 교수 김동춘 등이 주요 연사를 하였다. 6개국 34명의 세계 석학이 참여하여 꽤나 규모가 컸던 이 포럼은 100년 전 온 국민이 외쳤던 만세와, 100년간 한국의 역사를 다시금 연상케 하였다.

 

임시정부 100주년, 우리가 지녀야할 태도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 운동 이후에 일본통치에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해 생겨났다. 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하였으며, 4월 13일 한성 임시정부와 통합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하였다. 광복운동의 전개에 따라 블라디보스토크, 상하이, 서울에 청사를 두었던 흔적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은 흩어져 있던 각지의 임시정부를 하나로 통합하였다는 점에서 독립 운동가들의 구심점이 될 수 있었고, 가장 큰 의의는 공화정을 실현했다는데 의의가 있으며 우리 선조들이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상황에서도 광복에 힘썼음을 보여준다. 100년 전의 임시정부가 존재했기에 현재의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이 있는 것 아닐까. 우리는 100년이라는 긴 시간의 무게를 담아 임시정부가 가진 의미와 그 존엄함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임시정부의 발자취가 담긴 그곳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수립 이후 1932년까지 상하이의 청사를 주로 사용하였으며, 중국 내에서도 항저우, 전장, 류저우, 충칭 등으로 청사를 옮기면서 광복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상하이 여행을 가면 임시정부 청사 유적지가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상하이시 황푸 구에 위치해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유적은 상하이 여행을 갈 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꼭 한 번 들러 봐야할 곳이 아닌가 생각하는 바이다.

 

동국IN 9기 정예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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