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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외고>아픔은 늙지 않는다

-회색눈사람을 읽고

참고자료

‘아프게 사라진 모든 사람은 그를 알던 이들의 마음에도 상처와 같은 작은 빛을 남긴다.’ 

 

소설을 읽을 때면 마음이 쓰릴 때가 있다. 굳이 내게 일어날 만한 일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묵묵히 소설에 스며들며 읽다보면 소설 속 인물에게 뿐만 아니라 내 마음에도 너무나 선명하게 자국이 날 때. 그럴 때가 있다. 그 상처는 간접적인 경험에 의한 것이지만, 지독히도 선명해서 한동안 가슴을 따갑고 아프게 만든다.

 

‘회색’은 이것인지 저것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색깔이다. 또는 그런 상태를 지칭하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는 어떤 신념을 쫓아서 열정을 다 해 바쳐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져버린 사람을 지칭하는 것 같기도 하다. 또한 ‘눈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흔적조차 없이 녹아 없어져 버리는 허상이다. 내 이름으로 죽어간, 머나먼 이국땅에서 그것도 ‘불법체류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죽어간 나 아닌 나. 한때의 열정이 있어 그것이 살아가는 희망의 전부인줄 착각하고, 모든 것을 다 걸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계획된 어떤 음모에 이용당했음을 알게 된 아픔 혹은 절망. 이 소설은 역사 속 한 시기를 분투하고 치열하게 살아내었지만 자기 자신의 흔적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 여성에 대해 그리고 있다. 자신은 속하길 간절히 원했지만 결국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그 시기를 ‘짧은 시기지만 일생을 두고 영향을 미치는 그러한 시기’, ‘혼란인 동시에 아픔이었던 그 시기’라고 표현하는 가슴 아픈 인물에 대해 담고 있다. 제목처럼 소설 속 주인공은 철저하게 이용당하는, 존재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매개물에 불과했다. 치밀하게 계획된 어떤 음모에 희생당해 이름마저 뺴앗기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안과 정, 김이 존재하는 것은 확실했고, 그 확실성이면 내게는 충분했다”고 회상한다. 그 당시 그녀에게는 아픔도 있었지만 그녀를 가장 크게 자극했던 것은 ‘희망’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신뢰받기를 갈망했지만 신뢰받지 못했다. 그들에게 그녀는 자신들의 계획 성공을 위한 매개물이었을지 몰라도 그녀에게 만큼은 ‘우리’였다. 소설 속에서 그녀는 말한다. ‘희망이라는 것은 마약과 같은 것이라고. 그 마약과 같은 희망은 고통을 동반하기에 그리고 그 고통을 알고 있기에 희망에의 열망은 더 강화된다고.

 

그녀는 결국 살아간다. 살아가다 문득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죽어간 여인에 대한 기사를 보고서야 그때의 일을 떠올릴 정도로 그때를 극복하며 살아간다. 그녀를 완성시킨 것이 희망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은 아픔과 상처로 쓰여 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완성의 상처와 아픔이 그렇듯 끝없이 삶을 완성하고 싶은 열망이 희망과 기구를 불러 일으켜 그 시기 이후 그녀를 살게 만든 것을 아닐까. 그리고 그 아픔들을 감싸 안은 부재했던 그녀의 과거의 삶들은 고스란히 존재의 자리로 이동해 마치 부재와도 같았던 그 시절을 그녀의 전체 삶 속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기로 명명하게 하였다.

눈사람을 만들어 보았는가. 밤에 만든 눈사람이 아침이 되면 녹아있는 모습도 보았는가. 시간은 결국 눈사람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린다. 시간은 하얀색을 회색의 잿빛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 속 그녀는 말한다. ‘아픔은 늙지 않는다.’ 시간은 모든 것을 지워버리지만 아픔을 기억하지는 않고, 상처를 덮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아픔은 늙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일은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사람으로 생긴 아픔은 스스로 그리고 또 다른 사람으로 아물게 되는 것일 것이다.

 

아프게 사라진 모든 사람은 그를 알던 이들의 마음에도 상처와 같은 작은 빛을 남긴다.’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녀는 아마 평생 그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더불어 그 아픔과 상처를 잊지 못할 것이다. 또한 그 희망도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극복해 나갈 것이다. 그 기억은 추억 정도로 남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들이 앞으로의 그녀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최서연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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